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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지라고 말할 용기

한국인은 왜 유독 불안을 잘 느낄까 (한국인들이 남들 평가에 민감한 이유)

by ellev 2022. 10. 21.
이번 글은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의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한국인이 유독 취약한 불안의 종류

바로 고립 불안이다.

Fear of negative evaluation
부정적 평가에 대한 두려움

 

즉, 한국인은 타인에게 부정적 평가를 받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유독 강하다.

왜냐하면 그 무리에서 고립될 것 같은 불안감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남들이 알면 뭐라 그러겠니?
내가 남들 보기 창피해서 얼굴을 들수가 없어.
너, 남들이 알면 욕해!


그럼 왜 한국인은 고립에 대한 불안이 높을까?

외로움에 관한 5-HTTLPR 유전자가 높다고 한다. 이게 높으면 집합주의로 간다. 즉, 외로움을 잘 느끼는데 전 세계적으로 탑은 한국이다.

 

Photo by Ewan Yap on Unsplash

 

한국=관계주의

그런데 더 나아가 집단에 소속돼 있다고 외로움을 안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이다.

집단주의라면 집단에 속하면 외로움을 덜 느껴야 하는데 한국인들의 집단 내에서도 외로움을 비교적 쉽게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집단에 소속돼 있어도 ‘우리’라는 
(공통된) 자아가 반드시 필요한 것

 

그렇다면 가족이라는 집단에서도 외로움을 느껴 '우리 엄마', '우리 가족'이라고 말하게 된 걸까?

언제부터 ‘우리 엄마’라는 말을 쓰게 되었을까?

 

 

요즘 들어 사람들 만나는 게 힘들다

혹은 싫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Photo by visuals on Unsplash
 

하지만 들여다보면 오프라인 플랫폼만 옮겼을 뿐 온라인으로 끊임없이 교류하고 있는 한국인들.

집순이 집돌이 들도 나가지만 않을 뿐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끊임없이 교류하고 있다.

 

개인차는 존재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대부분 외로움을 잘 느낀다. 

 

그러니 외로움을 이겨내게 해주는 타인의 존재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쓸 수밖에 없고,
고립에 대한 불안은 강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부정적 평가에 대한 예민함이 불안에도 나타나는 것

여기서 이 ‘부정적 평가’란 바로 자신이 내리는 것이 아닌 ‘남’이 내리는 평가라는 것이 주목할 점이다.

 

 

그럼 가장 큰 문제는 뭘까?

남의 시선으로 내리는 나에 대한 평가, 남의 기대에 맞추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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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준이 없으니 남의 기준에 맞춰 선택하고 살아간다.
그리고 남을 따라 했으니 뭘 해도 만족도가 떨어지는 악순환의 반복.

 

그러니 무엇보다 내 기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처한 상황과 기준은 계속해서 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러므로 자주 고민해야 한다. (크게 X)

늘 끊임없이 기꺼이 자주 '나'의 선택과 기준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왜 살면서 우리는 늘 혼란스럽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걸까?

바로 자기 정의가 없기 때문!

우리는 자기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 나에게 운동화란? 나에게 자동차란? 

위와 같은 고민을 자주 하고 내가 '누구'인지 정의를 내릴 수 있게 되면

남의 기준, 남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닌 

'나'에게 필요한 자동차, 

'내'가 좋아하는 운동화를 구매할 수 있게 된다.

 

 

자기 정의를 만들어 가야 하는 이유

답이 있는 게 아니고 답일 필요도 없지만, 내 삶을 살아가는데 기준을 세우는 것이 남의 평가를 지나치게 신경 쓰는 것을 멈추고 '고립 불안'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예) "나에게 ____는 ____이다."를 매일 써보는 연습

 

 

직장에서도 적용되는 원리

업무가 바뀌든 직급/연차가 올라가든 상황이 바뀌면 또 기준이 바뀐다. 그러므로 내가 잘하는 것, 상대방이 잘하는 것 등 자기 정의를 내려야 한다.

 

분명한 자기 정의 없이 업무 분담을 얘기하면 

‘쟤가 나한테 일을 떠넘기면 어쩌지?’
‘나 혼자 일 독 박쓰는 거 아냐?’

하는 생각으로 괴로워질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는 자기 정의 내리는 것에 생소했다.

맞던 틀리건 내가 보는 정의를 생산할 수 있는 습관이 필요하다.

 

이것은 특히 다른 사람과 늘 공존(비교) 해야 하는 바람에,
그래서 고립 불안이 높을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에서
우리가 문제를 대처해 나갈 좋은 출발점이다.

 

 

“자주” 느끼는 행복은 크기보다 빈도가 필요하다.

Photo by Madison Oren on Unsplash

 

내 기준에 대한 고민도 크기보다 빈도가 중요하다. 그러면 나만의 이론이 계속 남의 이론과도 더해지고 떼어지고 다듬어져 정교화된 철학이 된다.

저 사람은 자기만의 철학이 있는 사람이야

 

 

자기 인생의 철학자가 되자. 

원책대로만 평생 살려고만 하면 고집불통이 된다. 그러므로 남의 기준과 내 기준 사이에서 계속 고민해야 한다.

오늘 적절했던 기준이 내일은 부적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립 불안 없애는 행동 팁

내가 먼저 이야기하는 것

우리는 고립 불안이 클수록 어떻게든 나중에 이야기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먼저 의견을 말해보고, 먼저 인사하는 등 사소한 이야기를 먼저 선점하는 것이 의외로 강력한 불안의 진정제가 된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먼저 의견을 말했는데 정답이 아니다? 그러면 혼났던 부정적인 경험이 많아서 더 나중에 말하거나 침묵하려 하고 이것이 더 큰 고립 불안을 일으키는 악순환 고리 2가 되는 것 같다.)

 

먼저 웃고,
먼저 감탄사를 표현하고
먼저 의견을 내어보자.

 

불안을 증폭시키는 사회

돈을 더 벌라고, 집을 더 가지라고, 더 좋은 차를 몰라고 몰아붙이는 사회이지만

그 돈으로 무엇을 할지, 그 집안에서 어떻게 살지, 무슨 소망을 가져야 할지에 관심을 두지 않는 사회이다.

 

바로, 불안을 만들고 증폭시키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사회 전반에 퍼진 불안

불안이 큰 사회의 특징 = 불안 완화제를 행복 촉진제로 착각하는 사회

불안 완화제: 그것이 있기 때문에 불안하지 않게 되는 것, 무언가 든 든 든 해지는 것
행복 촉진제: 그것이 있기 때문에 더 행복해지는 것

 

이 둘을 구분하는 이유?

불안이 없다고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불안 완화제는 돈이라고 할 수 있는데

 

노벨경제학상 수상 심리학자 대니얼 가너먼(Daniel Kahneman)

행복의 양은 연 소득 7만 500불이 기준(한화 약 8,000만 원 내외)이라고 정의함

  • 8천만 원 이상일 때: 돈의 부족함으로 생기는 불행 >> 불안이 준다.
  • 2천만 원 이하: 피해야 할 것을 제대로 피하지 못할 수 있다. >> 불행의 가능성이 크다.
돈은 불안 완화제는 될 수 있으나
결코 행복 촉진제는 될 수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없으면
늘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러데 돈에 집착하면 돈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고, 나보다 돈이 더 많은 사람들이 내 눈앞에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하면서 더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Photo by Milk-Tea on Unsplash

 

불안을 느끼지 않는 자는 죽은 자이다.

 

 

불안을 불편하지만 함께할 동반자로 여기자.

그러므로 이 불안을 외면하거나 억누르려고만 하는 건 오히려 어리석은 일이다.

나의 불안을 감지하고 ‘왜’, 그리고 ‘어떻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더 활기차고 (행복한) 삶을 불러온다.

 


 

이번 글은 아래 동영상을 바탕으로 썼습니다.

https://youtu.be/7c5f4QzRb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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