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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박사과정 생존기

대환장의 미국비행

by ellev 2022. 10. 3.

집 나가는 날짜와 출국 날짜가 하루 떠서 공항 근처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직전까지 청소하고 짐 정리하느라 고단했는데 바로 비행기를 타지 않고 하루라도 호텔에서 쉬게 된 게 더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오션뷰로 예약한 제이 덕분에 멋진 인천바다를 실컷 즐길 수 있었다. 저녁에는 ‘여수밤바다’를 틀어놓고 제이는 발코니앞에 앉아, 미나와 나는 침대에 턱괴고 엎드려 바다와 하늘을 쳐다봤다.

 

미나리가 호텔 메모지에 남긴 메모

 

 

그런데 저녁으로 먹은 편의점 도시락이 탈이 난 건지, 그동안 짐 정리로 몸살을 앓을게 터진 건지.

 

공항에 도착해서 짐 부치는 줄을 서 있는 동안 배에서 난리가 났다! 온 몸에 힘을 주고 참고 참았는데 식은땀이 줄줄 나는게 보통의 것이 아니었다.

 

결국 짐 부치다 말고 항공사 직원에게 말했다.

 

“꼭…두 사람 다… 있어야 하나요..?”

“네? 왜 그러시죠?”

 

“그게… 제가… 지금 너무 화장실이…”

“네네! 가셔도 돼요.” (내 얼굴빛이 어땠는지 상상이 감)

 

바로 화장실로 뒤뚱뒤뚱 걸어갔다.

‘이러다 비행기 못 타는 거 아냐?’

구급차를 부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온몸이 밸밸 꼬이고 장이 뒤틀리듯 아팠다. 구토와 설사를 하고 나서야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공항 약국에서 약을 사 먹고 비행기를 탔다. 거의 탈진상태였던 나는 인천에서 경유지인 샌프란시스코까지 10시간 30분 동안 한 번도 깨지 않고 내내 잤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다음 비행기까지 7시간이 남은 상황. 다행히 그곳에 살 때부터 친구인 저스틴이 마중 나왔다.

 

일단 버클리에 있는 저스틴의 집으로 향했다. 잠시 쉬다가 제이와 미나는 저스틴을 따라 다른 지인의 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이런 미친 샌프란시스코 물가! 카트 사용료가 무려 9000원 정도. 모든 물가가 올랐다.

 

 

 

 

실리콘밸리 UX 디자이너 가족분

아이 셋을 키우는 부부인데 여자분은 실리콘밸리에서 UX 디자인일을 하시고 남자분은 파트타임 일을 하며 모든 육아와 살림을 맡고 계시다.

 

나도 굉장히 좋아하고 따르던 분들인데 너무 아쉽게도 아직 급체의 여운이 남아 있어 저스틴네 소파에서 잠들었다. (이때까지 5끼를 건너뛰었는데 살이 안 빠졌다?!)


 

이제 다음 비행기를 타러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갈 시간.  

여유롭게 도착해서 느긋하게 앉아 기다렸다. 또다시 밤 비행기라 공항도 한산하고 조용했다.

그런데 그냥 가면 철리스가 아니지

우리가 앉아있던 곳은 E5 게이트.

 

 

“왜 우리 비행기 이름이 안 쓰여있어?”

“이거 다음 비행기라서 그럴 거야. 기다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물어봐.”

“알았어. 한번 더 보고 올게.”

 

 

제이는 항공편마다 게이트 정보가 나오는 대형 화면을 몇 번씩 확인하고 오더니 확신했다.

 

 

“여기 맞아. 유나이티드는 E5야.”

“응, 그래.”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던 게 정말 한이다, 한!)

 

 

비행기 시간 15분 전.

분위기가 싸-했다.

E5앞 앉아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결국 엉덩이를 움직여 물어보러 간 제이.

 

 

(직원) “뭐? 유나이티드? 그건 F5야.”

(우리) “?!!!!!!!!!!!!!”

 

(직원) “F5는 저어기 완전 끝이야.”

 

 

이쯤에서 공항 직원도 다급해졌다.

 

 

(직원) “너 이름이 제이? 오케이! 넌 뛰어! 난 유나이티드 비행기에 지금 가고 있다고 전달할게!”

 

 

그럼 우리가 할 일은????

 

 

 

가만 안 둔다 이 식기!!

 

그렇게 우리는 샌프란시스코 공항을 가로질러 한밤의 질주를 시작했다.

비행기 탑승 후 후들거리는 몸과 정신을 겨우 부여잡고 있는 우리에게 미나리가 말했다.

 

 

좀 떨렸는데 진짜 재밌었어!




 

Picture Source: Matthew Smith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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