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팀 매니저에게 퇴사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다소 당황한 듯 보였지만 곧 침착을 되찾았다.
(눈물은 애써 참는 듯했다. 괜찮아, 이해한다.)
사람 구하기 어려운 시기이므로 바로 이어서 말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파트타임이건 단기 계약이건 서포트할 테니 알려주세요."
"아, 그럼 너무 좋을 거 같긴 한데... 근데 다른 나라는 몰라도 한국 고용법상 안될 거예요, 아마."
뭐, 내 입장에서야 아쉬울 것 없으니 알겠다고 했고 매니저는 담담히 다음 절차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한 달은 인수인계하기에 결코 짧은 기간은 아니기에 나도 회사도 서로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 상황이었다.
예전에 비하면 훨씬 가볍게 일을 하고 있었다.
감투는 최대한 사양하고, 튀는 것도 자제, 책임은 최대한 분사시켜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이렇게 일했더니 스트레스는 반으로 줄고 동료들과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이전까지 나는 정반대 스타일이었다.)
'내 거'라는 주인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애초에 회사 거에 주인의식이라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해 오긴 했었다.) 알고 있는 지식은 기꺼이 적극적으로 다른 팀원들이나 주니어 동료들에게 퍼주었다.
그래서 첫날부터 몰두한 것이 프로젝트 교육자료 만드는 것과 주니어 팀원들에게 '비법 전수'였다.
앞뒤로 꽉 막힌 새 매니저가 왔을 때는
'이 막힘을 뚫어보리라'하는 도전의식을 불태우기보다는 내 혈압이 터지기 직전이 되면 '에라 모르겠다'하고 가볍게 넘어 갔다.
그랬더니 그 매니저.
입을 열면 사하라 사막 같던 회의 분위기가 슬금슬금 풀어지고 급기야 매니저는 회의 내내 방실방실 웃었다. (그리고 날 좋아하는 것 같다)
목숨 걸지 말고 일하면 꽤 할만하다
전전긍긍하지 않으니 동료가 경쟁상대에서 친구가 되었다. 기억상실증에 걸려 짜증 내고 변덕스러운 상사도 괴물이 아니라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래, 너도 얼마나 힘들겠냐.
맡고 있는 프로젝트도 수십 개고,
말 안 듣는 팀원들도 있고,
위에선 쪼고...
그래그래.'
그래,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진작 이렇게 살았어야 했다. 일하는 게 너무 즐거웠다.
10년이 넘는 직장생활을 마무리하며 드는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사랑하는 월급을
당분간 못 만날 테니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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